認. 言+忍/로마서(Römer)
로마서 7:1~25(신앙인의 딜레마, 율법)
비인마음
2011. 8. 28. 18:28
1. 신앙인의 딜레마, 율법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율법일 것입니다. 율법에 나온 금지조항이나 죄의 목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조항이 너무나 완벽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대인 랍비는 구약성서에 나온 율법 조항들을 세어본 결과 총 613개라고 하였는데, 그 중 긍정적인 계명이 248개, 부정적인 계명이 365개라고 합니다. 이 것은 사람의 뼈마디 수가 총 248개이고, 1년이 365일이니까, 사람이 1년 내내 지켜야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딜레마입니다. 매일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2. 율법의 역할
사람들은 율법을 일종의 악(?)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특히 개신교인들은─율법을 전혀 쓸모 없는 낡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위험한 생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악으로 생각하는 딜레마를 낳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악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했습니다(7:12).
율법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것에서 그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율법을 듣고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영─그, 프뉴마pneuma)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기때문에(7:6) 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율법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던 것이고, 율법은 그 죄의 실체를 밝혀주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앟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율법이 하는 선한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7:1b). 마치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나는 것 처럼 말입니다(7:2). 그래서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그 여자는 간음을 하는 것이지만, 남편이 죽은 이후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다(7:3).
두 번째 죄가 나오는 곳은 바로 죄의 욕정입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사람들 속에 탐욕을 일으킵니다. 계명은 탐욕을 버리라고 말하지만 죄는 그 탐욕을 자꾸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7:8).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장면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사탄)가 그들에게 탐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결국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짐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듣기 전에는 죄를 모르고 지었지만, 율법을 듣고부터는 죄를 알고도 짓습니다. 그 것이 바로 죄가 주는 탐욕의 불가항력입니다. 또 죄를 지으면 지을 수록 율법의 조항들은 사람을 죄책감이라는 구렁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7:8b).
여기서 신앙인이 가지는 딜레마가 나타납니다.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그가 살아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그는 죽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을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그른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7:10). 계명이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계명은 선합니다. 하지만 죄가 그 계명을 통해서─사람으로 하여금 계명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게 만들어서─그를 속이고, 죽인 것입니다(7:11).
3. 딜레마의 극복, 예수 그리스도
사람은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7:15).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7:17). 참으로 우리는 원하는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7:19).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악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7:21).
우리가 이 딜레마─율법으로 인해 생기는 탐욕과 죄책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입니다(마태 5:17).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율법이 가지는 문자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시는 진리의 뜻(요한 1:14; 8:32)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율법일 것입니다. 율법에 나온 금지조항이나 죄의 목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조항이 너무나 완벽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대인 랍비는 구약성서에 나온 율법 조항들을 세어본 결과 총 613개라고 하였는데, 그 중 긍정적인 계명이 248개, 부정적인 계명이 365개라고 합니다. 이 것은 사람의 뼈마디 수가 총 248개이고, 1년이 365일이니까, 사람이 1년 내내 지켜야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딜레마입니다. 매일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2. 율법의 역할
사람들은 율법을 일종의 악(?)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특히 개신교인들은─율법을 전혀 쓸모 없는 낡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위험한 생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악으로 생각하는 딜레마를 낳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악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했습니다(7:12).
율법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것에서 그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율법을 듣고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영─그, 프뉴마pneuma)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기때문에(7:6) 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율법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던 것이고, 율법은 그 죄의 실체를 밝혀주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앟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율법이 하는 선한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7:1b). 마치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나는 것 처럼 말입니다(7:2). 그래서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그 여자는 간음을 하는 것이지만, 남편이 죽은 이후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다(7:3).
두 번째 죄가 나오는 곳은 바로 죄의 욕정입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사람들 속에 탐욕을 일으킵니다. 계명은 탐욕을 버리라고 말하지만 죄는 그 탐욕을 자꾸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7:8).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장면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사탄)가 그들에게 탐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결국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짐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듣기 전에는 죄를 모르고 지었지만, 율법을 듣고부터는 죄를 알고도 짓습니다. 그 것이 바로 죄가 주는 탐욕의 불가항력입니다. 또 죄를 지으면 지을 수록 율법의 조항들은 사람을 죄책감이라는 구렁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7:8b).
여기서 신앙인이 가지는 딜레마가 나타납니다.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그가 살아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그는 죽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을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그른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7:10). 계명이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계명은 선합니다. 하지만 죄가 그 계명을 통해서─사람으로 하여금 계명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게 만들어서─그를 속이고, 죽인 것입니다(7:11).
3. 딜레마의 극복, 예수 그리스도
사람은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7:15).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7:17). 참으로 우리는 원하는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7:19).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악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7:21).
우리가 이 딜레마─율법으로 인해 생기는 탐욕과 죄책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입니다(마태 5:17).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율법이 가지는 문자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시는 진리의 뜻(요한 1:14; 8:32)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