認. 言+忍/로마서(Römer)
로마서 9:1~29(토기장이 하나님)
비인마음
2011. 8. 28. 18:30
1. 바울의 고민
바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것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동족인 겨레를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고 할 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9:3). 그에게는 동족을 향한 큰 슬픔과, 끊임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9:2).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또한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육신에 따라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9:4,5a).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바울이 끊임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속한 그 많은 언약들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유는 9장 6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그의 자손이라고 부를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이삭에게서 태어난─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질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9:6-9).
이삭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중에서도─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9:10-13).
이러한 모든 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9:16).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은 아닙니다(9:14). 그 분은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9:17,18).
여기서 우리는 또한 구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민족주의자라서 동족을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자신의 동족─더 나아가서 이 모든 세계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토기장이 하나님
토기장이는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습니다(9:21).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피조물을들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 없습니다(9:19,2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호 2:23)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호 1:10)
라고 말입니다(9:25b,26).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사 10:22, *표 이하는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칠십인역에 있음. 우리말 성서에는 없음.)
3. 구원은 하나님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구원받을 자를 택하심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은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택하시는 주권입니다. 또한 그 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제하실 수 있는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흔히들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자신들 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가 있고, 노력과는 상관 없이 구원될 것이라고 예비된 이가 있다고 오해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생각인 것입니다.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따라'서 살아가게 하시고, 날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또한 바울이 가졌던 동족을 향한 그 애틋함을 저에게도 허락하셔서, 나 혼자 믿고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 동족과 더 나아가서 이 온 세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을 얻을 때를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바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것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동족인 겨레를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고 할 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9:3). 그에게는 동족을 향한 큰 슬픔과, 끊임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9:2).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또한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육신에 따라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9:4,5a).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바울이 끊임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속한 그 많은 언약들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유는 9장 6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그의 자손이라고 부를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이삭에게서 태어난─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질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9:6-9).
이삭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중에서도─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9:10-13).
이러한 모든 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9:16).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은 아닙니다(9:14). 그 분은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9:17,18).
여기서 우리는 또한 구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민족주의자라서 동족을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자신의 동족─더 나아가서 이 모든 세계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토기장이 하나님
토기장이는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습니다(9:21).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피조물을들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 없습니다(9:19,2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호 2:23)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호 1:10)
라고 말입니다(9:25b,26).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사 10:22, *표 이하는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칠십인역에 있음. 우리말 성서에는 없음.)
3. 구원은 하나님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구원받을 자를 택하심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은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택하시는 주권입니다. 또한 그 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제하실 수 있는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흔히들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자신들 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가 있고, 노력과는 상관 없이 구원될 것이라고 예비된 이가 있다고 오해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생각인 것입니다.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따라'서 살아가게 하시고, 날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또한 바울이 가졌던 동족을 향한 그 애틋함을 저에게도 허락하셔서, 나 혼자 믿고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 동족과 더 나아가서 이 온 세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을 얻을 때를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