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해나 혈루증(심각한 출혈이 멈추지 않는 병)을 앓아 오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인은 기혼여성(γυνη)이다. 곧, 그 여인의 아픔은 혼자만의 그것이 아니다.
그 여인이 속한 가정, 즉 공동체의 아픔이다.
물론 결혼한 것만이 공동체 형성의 조건은 아닐 터.
누구의 아픔이든 그것은 곧 공동의 아픔이다. 더 나아가, 공동의 아픔이어야만 한다.
혼자 아파해야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혼자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인생사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지금껏 그 여인이 만났던 의사들은 '무능'했다. 적어도 그 여인에게만큼은!
'다른 사람들은 잘도 고쳐내면서, 왜 나만 이리도 못고쳐내는 걸까'
가진 것도 다 날려버렸다. 허망하다. 사랑도 돈도 없다.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더' 아파졌다.
병이 중(重)해졌다. 병만 무거워졌으랴.
모든 것이 무겁다. 몸도, 마음도, 손가락 한 마디까지. 그럴수록 삶의 무게는 더더욱...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 외마디.
이유 모를 용기 한움큼. 머릿속 생각 한찰나.
'저 옷에 손만 대어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글쎄 구원을 받을 거란 생각은 지극히 관찰자적인 상상이 아닐까?
기왕에 예수를 '믿는' 이들도 열두 해를 피를 쏟아내면
구원의 희망이 엷어져만 갈텐데...
아니다 차라리 아무 희망도 없는 그 여인에게야말로 구원받고 싶다는 믿음이야말로
'진심'일 것만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는 것이고,
예수는 그 여인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서부터, 자신을 향한 절망의 끝없는 나락으로부터...
말랐다. 그 누구도 마르게 하지 못했던 혈루의 '근원'이 그 '뿌리'가...
자신을 그토록 '피말리게' 했던 그 피의 '샘(πηγη)'이...
이제 그 여인의 속에는 피의 샘이 마르고 생명이 샘(πηγη)솟는다.
마치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또 하나의 익명의 여인처럼(요 4,14).
그 여인은 기혼여성(γυνη)이다. 곧, 그 여인의 아픔은 혼자만의 그것이 아니다.
그 여인이 속한 가정, 즉 공동체의 아픔이다.
물론 결혼한 것만이 공동체 형성의 조건은 아닐 터.
누구의 아픔이든 그것은 곧 공동의 아픔이다. 더 나아가, 공동의 아픔이어야만 한다.
혼자 아파해야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혼자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인생사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지금껏 그 여인이 만났던 의사들은 '무능'했다. 적어도 그 여인에게만큼은!
'다른 사람들은 잘도 고쳐내면서, 왜 나만 이리도 못고쳐내는 걸까'
가진 것도 다 날려버렸다. 허망하다. 사랑도 돈도 없다.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더' 아파졌다.
병이 중(重)해졌다. 병만 무거워졌으랴.
모든 것이 무겁다. 몸도, 마음도, 손가락 한 마디까지. 그럴수록 삶의 무게는 더더욱...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 외마디.
이유 모를 용기 한움큼. 머릿속 생각 한찰나.
'저 옷에 손만 대어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글쎄 구원을 받을 거란 생각은 지극히 관찰자적인 상상이 아닐까?
기왕에 예수를 '믿는' 이들도 열두 해를 피를 쏟아내면
구원의 희망이 엷어져만 갈텐데...
아니다 차라리 아무 희망도 없는 그 여인에게야말로 구원받고 싶다는 믿음이야말로
'진심'일 것만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는 것이고,
예수는 그 여인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서부터, 자신을 향한 절망의 끝없는 나락으로부터...
말랐다. 그 누구도 마르게 하지 못했던 혈루의 '근원'이 그 '뿌리'가...
자신을 그토록 '피말리게' 했던 그 피의 '샘(πηγη)'이...
이제 그 여인의 속에는 피의 샘이 마르고 생명이 샘(πηγη)솟는다.
마치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또 하나의 익명의 여인처럼(요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