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認. 言+忍/로마서(Römer)

로마서 9:30~10:21(율법의 의, 믿음의 의)

1. 이스라엘과 복음(9:30~10:4)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은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우크 에프타젠, ουκ εφθασεν).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근거로 한 행위는 그들에게 걸림돌(토 프로스콤마, το προσκομμα)이었습니다(9:32). 걸림돌은 '죄', '허물', '과실', 혹은 '범죄(실족)할 기회'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하면 우리는 항상(!) 죄를 지을 여지를 많이 갖게 되고, 그만큼 많은 짓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에 근거한 의는 걸림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근거한 의는 반석(헤 페트라, η πετρα)입니다.

9:33에는 수수께끼같은 말씀이 인용됩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8:14; 28:16 인용)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우리의 성소(사 8:14a)요 성전의 모퉁이돌(사 28:16)도 되시지만, 우리의 잘못된 행위에 의한 근거로서 그 분을 대할 때는 우리를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이십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요,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부르심을 받는 사람에게는─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3,24).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바로 예수가 부딪치는 돌이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넘어졌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열성이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그들을 인도한 것입니다(10:2,3).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주셨습니다(10:4).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2. 가까이 있는 구원의 말씀(10:5~1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가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10:8b; 신명기 30:14에서 인용).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말씀입니다(참조, 딤후 3:15-17). 그만큼 구원은 우리와 가까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위에 집착하게 될 때 구원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때로 마귀가 우리에게서 구원의 확신을 앗아가는 통로가 우리의 행위라고 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할 때 그 확신은 그야말로 굳건합니다.

따라서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서 부끄러움을 당한 이스라엘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가 더이상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아니라, 굳건한 모퉁이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는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10:11,12).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3)


3. 끝없는 하나님의 구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10:17).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10:14,15a) 라고말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불신에 대한 정당성을 항변하다 보면 선포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도 자신들은 들은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한탄을 합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히브리어, 미 헤에민 리쉬무아트누, miy he'emiyn lishmu'atnu)?"(이사야 53:1)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것을 근거로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10:19).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지도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나주고,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10:20, 이사야 65:1 인용), 그 것이 여의치 않자 이스라엘의 질투심을 일으키기 위해 이방인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도 하시고, 이스라엘을 화나게 하기 위해 어리석은 민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도 하셨습니다(19:19, 신명기 32:21 인용).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노력을 "복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하루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사 65:"2)고 묘사합니다.


4. 적용 및 기도

오늘도 저를 향하여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제가 제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시고, 모퉁이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함없는 신앙을 영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