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
8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그, 카타크리마katakrima)를 받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말한 정죄 즉 카타크리마katakrima는 카타크리노katakrino에서 온 명사입니다. 카타크리노는 전치사 kata와 동사krino의 합성어로서, 무엇에 '대하여 심판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단순히 심판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크리노krino만 써도 되는데, 왜 바울은 카타크리노katakrino라는 동사를 썼는지 8장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알 수 있습니다. 왜 바울은 크리노krino라는 동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를 붙인 카타크리노katakrino를 썼을까요.
그리스어에서 전치사 kata는 '~에 대하여', '~에 따라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카타크리노katakrino는 크리노krino에 비해서 심판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단순히 '심판하다'가 아니라 '(심판의 근거)에 따라서 심판하다'이며, '(죄)에 대하여 심판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정죄의 뜻도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함'입니다. 즉, 심판의 '근거'로서 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럼 그 심판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 근거는 5절에 나옵니다.
"육신을 따라(카타 사르카, kata sarka)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카타 프뉴마, kata pnuema)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8:5)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사망하는 판결의 근거는 그들이 육신을 '따라' 산 결과를 '따른'것이며, 반면에 그들이 심판을 받아도 죽지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더이상 육신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산 결과를 '따른'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을 받을 만한 죄가 있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서 그 근거가 소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무턱대고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도인들도 죽은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참조, 마태복음 25:31~46의 최후의 심판 : 양과 염소의 비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서 영원히 죽게 될 근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그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8:2).
2. 성령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면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8:26).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역시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kata)'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요,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8:27).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원문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kata prothesin)─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그 것을 우리는 압니다(8:28).
3. 확고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령의 뜻에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8:30).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번 영화롭게 하신 이후에는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8:3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8:32).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8:33).
환난도, 곤고함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협도, 칼도,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8:35). 왜냐하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하나님 자신의 뜻이기 대문입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말입니다(8:38,39).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스스로의 죄를 따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는 더 이상 제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그, 카타크리마katakrima)를 받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말한 정죄 즉 카타크리마katakrima는 카타크리노katakrino에서 온 명사입니다. 카타크리노는 전치사 kata와 동사krino의 합성어로서, 무엇에 '대하여 심판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단순히 심판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크리노krino만 써도 되는데, 왜 바울은 카타크리노katakrino라는 동사를 썼는지 8장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알 수 있습니다. 왜 바울은 크리노krino라는 동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를 붙인 카타크리노katakrino를 썼을까요.
그리스어에서 전치사 kata는 '~에 대하여', '~에 따라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카타크리노katakrino는 크리노krino에 비해서 심판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단순히 '심판하다'가 아니라 '(심판의 근거)에 따라서 심판하다'이며, '(죄)에 대하여 심판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정죄의 뜻도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함'입니다. 즉, 심판의 '근거'로서 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럼 그 심판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 근거는 5절에 나옵니다.
"육신을 따라(카타 사르카, kata sarka)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카타 프뉴마, kata pnuema)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8:5)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사망하는 판결의 근거는 그들이 육신을 '따라' 산 결과를 '따른'것이며, 반면에 그들이 심판을 받아도 죽지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더이상 육신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산 결과를 '따른'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을 받을 만한 죄가 있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서 그 근거가 소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무턱대고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도인들도 죽은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참조, 마태복음 25:31~46의 최후의 심판 : 양과 염소의 비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서 영원히 죽게 될 근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그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8:2).
2. 성령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면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8:26).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역시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kata)'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요,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8:27).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원문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kata prothesin)─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그 것을 우리는 압니다(8:28).
3. 확고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령의 뜻에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8:30).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번 영화롭게 하신 이후에는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8:3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8:32).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8:33).
환난도, 곤고함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협도, 칼도,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8:35). 왜냐하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하나님 자신의 뜻이기 대문입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말입니다(8:38,39).
4. 적용 및 기도
하나님, 스스로의 죄를 따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는 더 이상 제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認. 言+忍 > 로마서(Röm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9:30~10:21(율법의 의, 믿음의 의) (0) | 2011.08.28 |
---|---|
로마서 9:1~29(토기장이 하나님) (0) | 2011.08.28 |
로마서 7:1~25(신앙인의 딜레마, 율법) (0) | 2011.08.28 |
로마서 6:1~23(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0) | 2011.08.28 |
로마서 5:1~21(하나님, 변치 않는 소망의 근원) (0) | 2011.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