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
언행일치言行一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지요.
신행합일信行合一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행일치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행합일의 신앙입니다.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신앙' 그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2. 본문 연구
2.1. 오늘 본문은─어떤 의미에서─무서운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
여기서 '그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바울이 설정한 가상의 논쟁 상대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실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것이 '나'라고 생각하기가 훨씬─성서에 등장하는 여타의 실제 인물의 경우보다─쉽다는 것입니다. 한 번 써볼까요.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상수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상수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 상수도 똑같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
더 가까이 들리지요? 참으로 나 스스로가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은 이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립니다(2:2). 이런 사람들─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2:3~5).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각 개인個人)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6).
여기서 과연 의로운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2:13)
2.2. 본문 17절부터 바울은 가상의 논쟁의 상대를 유대인으로 좁힙니다. 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눈 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있다고 하면서, 그들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 아이의 교사로 확신하는 사람입니다(2:17b~20).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남을 가르치면서도,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2:21).
우리들 중에서도 남은 잘 가르치는데 자기 자신은 잘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은 잘 하는데, 자기 자신이 꼭 자신의 말대로 사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상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거만한(?) 자세를 취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민족─하나님의 선택을 받은─이라는 이른바 선민사상選民思想이지요. 선민사상,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우리가 항상 경험하는 것인데─그 것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그래서 오용하는 자세가 잘못된 것이지요. 그들은 율법을 자랑했지만, 율법을 지키지는 않아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2:23).
우리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나의 신분에만 도취되어 있어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한숨만 나오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걸 원하신다'고, '하나님의 사람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 만큼 내가 지킬 수 있는 부분은 반비례해서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율법을 따라서 몸에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3. 적용
오늘 하루 살면서 내가 남에게 하는 말과 내가 지키는 것 사이를 잘 조절해야겠습니다. 남에게 조언하기보다 그에 앞서 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나는 그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하고 생각을 해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정말 충고를 해주어야 할 상황에서도 그 말을 아낄 줄 아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를 배워야겠습니다.
4.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저의 행동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매순간 저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행동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을 비추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말과 행동을 가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언행일치言行一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지요.
신행합일信行合一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행일치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행합일의 신앙입니다.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신앙' 그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2. 본문 연구
2.1. 오늘 본문은─어떤 의미에서─무서운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
여기서 '그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바울이 설정한 가상의 논쟁 상대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실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것이 '나'라고 생각하기가 훨씬─성서에 등장하는 여타의 실제 인물의 경우보다─쉽다는 것입니다. 한 번 써볼까요.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상수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상수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 상수도 똑같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
더 가까이 들리지요? 참으로 나 스스로가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은 이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립니다(2:2). 이런 사람들─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2:3~5).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각 개인個人)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6).
여기서 과연 의로운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2:13)
2.2. 본문 17절부터 바울은 가상의 논쟁의 상대를 유대인으로 좁힙니다. 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눈 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있다고 하면서, 그들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 아이의 교사로 확신하는 사람입니다(2:17b~20).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남을 가르치면서도,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2:21).
우리들 중에서도 남은 잘 가르치는데 자기 자신은 잘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은 잘 하는데, 자기 자신이 꼭 자신의 말대로 사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상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거만한(?) 자세를 취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민족─하나님의 선택을 받은─이라는 이른바 선민사상選民思想이지요. 선민사상,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우리가 항상 경험하는 것인데─그 것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그래서 오용하는 자세가 잘못된 것이지요. 그들은 율법을 자랑했지만, 율법을 지키지는 않아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2:23).
우리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나의 신분에만 도취되어 있어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한숨만 나오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걸 원하신다'고, '하나님의 사람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 만큼 내가 지킬 수 있는 부분은 반비례해서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율법을 따라서 몸에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3. 적용
오늘 하루 살면서 내가 남에게 하는 말과 내가 지키는 것 사이를 잘 조절해야겠습니다. 남에게 조언하기보다 그에 앞서 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나는 그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하고 생각을 해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정말 충고를 해주어야 할 상황에서도 그 말을 아낄 줄 아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를 배워야겠습니다.
4.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저의 행동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매순간 저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행동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을 비추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말과 행동을 가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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