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신득칭의以信得稱義
개신교 교리중에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서 의를 얻는다는 것인데, 이와 비슷한 말로는 이신칭의以信稱義가 있지요. 전 이 두개를 합쳐서 이신득칭의以信得稱義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지요. '의'를 얻는다는 것보다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본문 관찰에서 보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셨지만, 절대적으로 의로운 존재는 될 수 없기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은 '의롭다 함'입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과 실수
아브라함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습니다(창 17:17). 아니 믿지 못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 백 세였고, 부인 사라는 구십 구 세였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시기 전까지 두 노인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믿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곧바로 순종하자 마자 이집트에 내려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사래때문에 자신이 죽을까봐 사래를 누이로 속입니다(창 12:10~20). 그래서 자신이 대접을 잘 받고 목숨도 부지할 것을 생각합니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아내를 바로에게 아내로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이라고 하는 지역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창 20:1~18). 그랄 왕인 아비멜렉이 아내를 취하려고 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을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처럼 여겨─실제로도 누이라고 말했음.─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실수가 많은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기셨는데 그 근거는 오직 하나,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었습니다. 워낙 충동적인 행동을 잘하는 아브라함인지라 하나님께서 처음 부르셨을때 반응하는 속도 역시 빨랐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 12: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동을 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동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기심을 받았다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4:3).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의롭게 여김을 받았을 뿐이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의로운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10ff).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는 착각에 빠지면 안됩니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하는 생각은 자신을 점점 더 자괴감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보다 앞섭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을 믿은 후에,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고(창 15:6), 창세기 17장에 가서야 믿음과 언약의 표지로 할례를 받게 됩니다. 할례는 믿음의 표지이지 믿음의 근거가 아닙니다. 믿음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할례를 믿음의 표지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자손이 별과 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는 계기가 됩니다(4:13~25).
3. 적용 및 기도
믿음이 아닌 외적인 것으로 스스로의 의로움을 드러내지 않게 하시옵소서. 외적인 것으로 믿음의 근거를 삼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김을 얻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나의 행위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나의 행위를 통한 스스로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는 욕심이 생겨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개신교 교리중에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서 의를 얻는다는 것인데, 이와 비슷한 말로는 이신칭의以信稱義가 있지요. 전 이 두개를 합쳐서 이신득칭의以信得稱義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지요. '의'를 얻는다는 것보다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본문 관찰에서 보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셨지만, 절대적으로 의로운 존재는 될 수 없기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은 '의롭다 함'입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과 실수
아브라함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습니다(창 17:17). 아니 믿지 못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 백 세였고, 부인 사라는 구십 구 세였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시기 전까지 두 노인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믿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곧바로 순종하자 마자 이집트에 내려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사래때문에 자신이 죽을까봐 사래를 누이로 속입니다(창 12:10~20). 그래서 자신이 대접을 잘 받고 목숨도 부지할 것을 생각합니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아내를 바로에게 아내로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이라고 하는 지역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창 20:1~18). 그랄 왕인 아비멜렉이 아내를 취하려고 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을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처럼 여겨─실제로도 누이라고 말했음.─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실수가 많은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기셨는데 그 근거는 오직 하나,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었습니다. 워낙 충동적인 행동을 잘하는 아브라함인지라 하나님께서 처음 부르셨을때 반응하는 속도 역시 빨랐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 12: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동을 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동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기심을 받았다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4:3).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의롭게 여김을 받았을 뿐이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의로운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10ff).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는 착각에 빠지면 안됩니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하는 생각은 자신을 점점 더 자괴감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보다 앞섭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을 믿은 후에,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고(창 15:6), 창세기 17장에 가서야 믿음과 언약의 표지로 할례를 받게 됩니다. 할례는 믿음의 표지이지 믿음의 근거가 아닙니다. 믿음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할례를 믿음의 표지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자손이 별과 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는 계기가 됩니다(4:13~25).
3. 적용 및 기도
믿음이 아닌 외적인 것으로 스스로의 의로움을 드러내지 않게 하시옵소서. 외적인 것으로 믿음의 근거를 삼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김을 얻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나의 행위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나의 행위를 통한 스스로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는 욕심이 생겨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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